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우포늪과 마을들에
예술의 옷을 입혀 사람과 자연,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들입니다.
나무, 물, 흙, 풀들의 반응은 바람의 결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각적 언어들을 만들어낸다. 바람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물들의 여러가지 표정들을 말하고자 한다.
오랜시간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온 우포늪 대자연의 일부가 사람의 형상으로 재탄생 되어지는 과정을 통해 물질에 스며있는 시간과 공간의 흔적이 현재의 우리와 연결되는 관계의 결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상단부가 동그랗게 깎여 있는 나무의 형상은 부드러운 방석과 같은 형태로 자연이 우리를 품는 편안함을 표현 한 것이다. 또 이 부드럽게 마감되어진 나무방석들을 쓰다듬고 만지며 그 촉감과 편안함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적당한 높이로 설치될 작품은 아이들이 쓰다듬고, 올라타고, 앉고, 숨기도 하며 어울려 지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지금까지 노동(삶)과 장소란 개념으로 작업을 해왔다. 나의 작업(삶)과 장소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적인 특징들이 연결되고 교차하면서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 을 작품의 완성이라 본다. - 이와 연관 된 작품 ‘움직이는 집’은 집을 소재로 삶과 환경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문과 창문이 없는 집은 지역과 지역, 도시와 도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경계 지어 분리함으로써 서로에게 멀어지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집은 바람과 늪지를 만나 반응하고,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원래의 의 도인 구획과 경계가 사라지는 사람들의 감정과 닮
생명은 일종의 나선형 운동의 한 과정입니다. 자연에서 가장 흔하고 물질이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우주의 나선형 형상을 이해하는 것은 우주에 대한 중대한 영감과 의미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개념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늪은 수생생물의 분포를 규정하고 수질을 정화하며 수생동물에게 서식지와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생태계의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제 작업은 생태체험장의 수생식물 군락지 중에 부들이 군락을 이루는 늪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늪지는 흐르는 물 위처럼 보이고 생명의 순환하는 모습과 그 반응으로 해석됩 니다. 원래 있던 자연의 풍경에서 자연의 역동적인 균형감과 조화로움을표현하려고 하며 생태적 순환고리와 이 땅의 미적 정서를 연결시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 작업은 자연에 관한 흥미롭고 숨겨진 개념에 관한 것입니다. 나선형은 어디에든 있지만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의 생활상 때문에 우리는 좀처럼 우리 주변에서 멈추어서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몇가 지 의미들을 찾아보는 것도 쉽지 않구요. 우리 삶과 연관된 의미도 깊이 생각하지 못합니다. 나선형은 대우주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은 소우주에서 발견됩니다. 대우주에는 안드로메다나 은하수 같은 수많은 은하 가 있고 소우주에는 돌개바람과 물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 고사리과 고비, 달팽이 그리고 고동 껍데기, 바이올린의 헤드, 나선형 계단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율처럼 여러 예술 분야에서 활용되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은 끊임없는 나선형태의 연속성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끝없는 시간의 법칙을 의미하기도 하구요. 어떻게 우리가 삶의 수수께끼를 해결하 고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제가 나선형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모든 시간 제가 제 자신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우포에 대나무 그물이 걸렸네. 시간이란 무엇일까? 관계란 무엇일까? 너의 기억이 그물에 걸리네 시간이 얽혀 또다른 시간이 되는 곳... 지금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운명이 저 그물위에 보이는가? 하늘처럼 텅빈곳을 생각하라 가시연꽃 저만치서 의문처럼 떠오르네 대나무 그물 속에 무엇이 걸려 있는가? 당신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 어떤 기억으로....
우포생태체험장에 (식물성 플라크톤 오두막)을 만들고 있습니다. (식물성 플랑크톤)는 무엇일까요? (식물성 플랑크톤)은 바다와 강에 살고 있은 아주 작은 생물입니다. 현미경을 통해서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우 많은 종류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있는데 모두 먹이사슬의 첫번째 단계(제일 밑에)속해 있습니다. 동물성 플라크톤의 먹이가 되죠. 공원에서 만들고 있는 플라크톤 모형은 원래 것의 100만 배 크기입니다. 저는 제 작품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자신이 매우 작다고 느끼길 바랍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많은 생명체 또한 보존해야한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죠. 우리가 볼 수 없는 생명체라도 우리 모두 잘 돌봐야 한다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해 자연과 바다를 위협하는 이 시점에 말입니다. 저는 이같은 식물성 플랑크톤 오두막을 여러 자연 미술제 참여하여 설치했습니다. 프랑스에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이태리, 레바논 브라질, 아시아에서는 버마(미얀마)에 설치했습니다. 저는 주로 큰 나무로 작업을 합니다. (코기와 항해하는 순무)